새벽 묵상
두란노침례교회 새벽기도 예배 묵상 자료입니다.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글수 42
오늘 본문에서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행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맙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래의 계획을 더 따르는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또한 하갈은 교만을 잉태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너무나 큰 어려움을 낳고 맙니다. 하지만 그 엉망된 상황을 하나님께서 수습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1. 기다리지 못함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분명히 내 자손으로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도 거의 포기한 아브라함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사래는 약속이 있은 후 10년이 지나자 인내심을 잃고 맙니다.
사래의 말을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생산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사래의 몸에 이상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폐경이 된 것을 몸의 변화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래는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래는 믿음을 잃기 가장 쉬운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겁니다. 폐경기의 여자가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똑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아내가 폐경기라는데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때 사래는 아주 그럴 듯한 의견을 내놓는 겁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고 하갈은 아이를 잉태합니다. 갈등의 씨입니다. 아랍 민족의 조상을 잉태한 겁니다.
사래와 하갈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 이삭의 후손들과 이스마엘 사이에 있을 갈등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식대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겁니다. 결과는 갈등입니다. 혼돈입니다. 그리고 아픔입니다.
인내심은 신앙인들에게 필수적인 겁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한 영혼의 전도를 맡기십니다. 그런데 1년 2년이 지나도 그가 돌아 올 줄 모릅니다. 그러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신앙입니다.
조지 뮬러는 자기에게 맡겨진 전도의 대상을 위해 죽을 때까지 기도하고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뮬러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뮬러가 죽었으니 끝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다면 끝까지 인내하며 그 이루어짐을 기대하십시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2.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하갈은 교만했던 결과로 사래에게 학대를 받고 그 앞에서 도망하고 맙니다.
광야로 나갔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한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나타나 묻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사자의 이 질문에는 답도 함께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질문은 니가 왜 지금 방황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왜 목적지가 없는 삶이 되어 떠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사래의 여종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잊었기에 네가 지금 이러고 있다는 겁니다.
여종이라는 신분을 잊고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 때문에 기고 만장했던 그녀의 잘못을 깨우치고 계신 겁니다.
다시 돌아가라는 겁니다. 너의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잊고는 자기 멋대로 살 때가 있습니다. 하갈 태 안에 들어 있는 아이가 우리에게는 세상적인 성공일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 되고 있다 보니 하나님을 잊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만에 빠져 살게 되는 겁니다.
하갈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이 때 우리가 할 일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물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종 누구누구야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너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라.”
1. 기다리지 못함
1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면서 분명히 내 자손으로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리고 15장에서도 거의 포기한 아브라함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사래는 약속이 있은 후 10년이 지나자 인내심을 잃고 맙니다.
사래의 말을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막으셨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생산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겁니다. 어쩌면 사래의 몸에 이상이 왔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폐경이 된 것을 몸의 변화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래는 이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래는 믿음을 잃기 가장 쉬운 지점에 도달해 있는 겁니다. 폐경기의 여자가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도 똑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아내가 폐경기라는데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습니다.
그때 사래는 아주 그럴 듯한 의견을 내놓는 겁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래의 여종 하갈과 동침하고 하갈은 아이를 잉태합니다. 갈등의 씨입니다. 아랍 민족의 조상을 잉태한 겁니다.
사래와 하갈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 이삭의 후손들과 이스마엘 사이에 있을 갈등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자기 식대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겁니다. 결과는 갈등입니다. 혼돈입니다. 그리고 아픔입니다.
인내심은 신앙인들에게 필수적인 겁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한 영혼의 전도를 맡기십니다. 그런데 1년 2년이 지나도 그가 돌아 올 줄 모릅니다. 그러면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내심이 부족한 신앙입니다.
조지 뮬러는 자기에게 맡겨진 전도의 대상을 위해 죽을 때까지 기도하고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뮬러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 돌아 왔습니다. 뮬러가 죽었으니 끝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다면 끝까지 인내하며 그 이루어짐을 기대하십시요.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2. 우리를 지켜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하갈은 교만했던 결과로 사래에게 학대를 받고 그 앞에서 도망하고 맙니다.
광야로 나갔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한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나타나 묻습니다.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나님 사자의 이 질문에는 답도 함께 들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질문은 니가 왜 지금 방황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왜 목적지가 없는 삶이 되어 떠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사래의 여종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을 잊었기에 네가 지금 이러고 있다는 겁니다.
여종이라는 신분을 잊고 뱃속에 들어 있는 아이 때문에 기고 만장했던 그녀의 잘못을 깨우치고 계신 겁니다.
다시 돌아가라는 겁니다. 너의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잊고는 자기 멋대로 살 때가 있습니다. 하갈 태 안에 들어 있는 아이가 우리에게는 세상적인 성공일 수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잘 되고 있다 보니 하나님을 잊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자만에 빠져 살게 되는 겁니다.
하갈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이 때 우리가 할 일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물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종 누구누구야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느냐?”
“너의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