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두란노침례교회 새벽기도 예배 묵상 자료입니다.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글수 42
소돔을 돌아 보러 온 두 천사가 드디어 소돔성에 도착했습니다.
1.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습니까?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18장에서도 그랬듯이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과 그의 천사를 알아 보았습니다. 소돔이라는 죄악의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여전히 알아 볼 수 있었던 롯은 히브리서에 의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 성 사람들은 알아보질 못합니다. 죄와 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두 천사들을 자기들의 성적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경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는 그 영적 무지함이 그들을 타락의 자리로 이끈 겁니다.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는 마음이 그 성을 타락시킨 겁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질 때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임재함을 체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세상을 따라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을 읽어야 되구요, 또한 쉼 없이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며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순간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참 들어야 할 것도 많고 보아야 할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자칫 그 세상의 것들에 빠져들다 보면 푹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끊을 수 있는 것을 과감히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에 돌아와야 합니다.
2. 롯과 롯의 가족은 소돔 땅의 영향을 받고 말았습니다.
롯에게 소돔은 사역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그에게 복주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과 그 가족은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그저 소극적인 모습으로 자기 삶만 지탱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에게도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아무도 변화시키질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선 그 땅에서 의인 10을 찾지 못하셨고, 아브라함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말았던 겁니다. 롯의 책임도 큰 겁니다.
오히려 롯과 그 가족은 그 성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살았습니다. 롯은 안이함에 젖어 버렸습니다. 그가 있는 곳이 편해 멀리 벗어나려는 생각을 얼른 갖질 못합니다. 그래서 저 멀리 있는 산까지 도망가 생명을 유지하라는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도 가까운 곳으로 도망할 수 있도록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롯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셨을까요?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롯과 그의 가족이 그 죄악의 성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롯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롯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소알이라는 성으로 도망하고 맙니다. 환경과 타협하는 롯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과 단호하게 자신을 끊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가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더 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로 하여금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죄악된 세상과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예 그 명령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아내는 세상과 연결된 고리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불타오른 도시임에도 그곳에서 즐겼던 쾌락과 또한 그곳에 쌓아 두었던 재산과 집이 맘에 걸린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쉬움을 갖고 방금 떠나왔던 곳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겁니다.
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소알 성음도 떠나 산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단절된 것까지 롯의 딸들은 소돔의 타락한 문화를 가지고 들어 오고 말았습니다. 후에 율법 공부를 통해 알게 되겠지만 근친상간은 하나님께서 엄격히 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자손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딸들은 그 일을 서슴지 않는 겁니다. 롯의 가문을 잇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죄를 허용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롯과 아내와 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 문화의 강한 영향력을 보게 됩니다. 요즘 왜 총기 등 폭력 사건이 난무합니까? 헐리우드 문화의 영향입니다. 아이들이 왜 돈 버는 것을 최고로 칩니까? 물질주의라는 세속적인 문명 때문입니다. 왜 대학을 가면 자 믿던 아이들이 신앙을 버리게 됩니까? 그만큼 속세적인 문화의 힘은 상상을 뛰어남을 정도로 강한 겁니다. 우리는 세속적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쉽질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세상과 단절된 삶인가? 하는 의문도 들게 됩니다. 아예 속세를 벗어나 수도승처럼 살아야 하는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은둔자의 삶을 원하시진 않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지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느냐는 겁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4). 주님은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재물로 간소화시키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만 높여야 합니다. 그런 마음만 갖고 있다면 문제 없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십시요.
1.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습니까?
본문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18장에서도 그랬듯이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과 그의 천사를 알아 보았습니다. 소돔이라는 죄악의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을 여전히 알아 볼 수 있었던 롯은 히브리서에 의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돔 성 사람들은 알아보질 못합니다. 죄와 악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눈이 가리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두 천사들을 자기들의 성적 노리개 정도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경악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는 그 영적 무지함이 그들을 타락의 자리로 이끈 겁니다.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는 마음이 그 성을 타락시킨 겁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님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질 때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분의 임재함을 체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쉽게 세상을 따라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말씀을 읽어야 되구요, 또한 쉼 없이 기도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무엇이 하나님의 음성이며 어떤 것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순간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요즘 세상은 참 들어야 할 것도 많고 보아야 할 것도 많은 세상입니다. 자칫 그 세상의 것들에 빠져들다 보면 푹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끊을 수 있는 것을 과감히 끊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에 돌아와야 합니다.
2. 롯과 롯의 가족은 소돔 땅의 영향을 받고 말았습니다.
롯에게 소돔은 사역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그에게 복주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롯과 그 가족은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그저 소극적인 모습으로 자기 삶만 지탱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에게도 하나님을 증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아무도 변화시키질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선 그 땅에서 의인 10을 찾지 못하셨고, 아브라함의 간구에도 불구하고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고 말았던 겁니다. 롯의 책임도 큰 겁니다.
오히려 롯과 그 가족은 그 성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살았습니다. 롯은 안이함에 젖어 버렸습니다. 그가 있는 곳이 편해 멀리 벗어나려는 생각을 얼른 갖질 못합니다. 그래서 저 멀리 있는 산까지 도망가 생명을 유지하라는 천사들의 음성을 듣고도 가까운 곳으로 도망할 수 있도록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롯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셨을까요?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롯과 그의 가족이 그 죄악의 성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지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롯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롯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소알이라는 성으로 도망하고 맙니다. 환경과 타협하는 롯의 모습을 봅니다. 세상과 단호하게 자신을 끊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는 가장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더 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로 하여금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죄악된 세상과 단절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아예 그 명령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아내는 세상과 연결된 고리를 끊을 수 없었습니다. 불타오른 도시임에도 그곳에서 즐겼던 쾌락과 또한 그곳에 쌓아 두었던 재산과 집이 맘에 걸린 겁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쉬움을 갖고 방금 떠나왔던 곳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겁니다.
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소알 성음도 떠나 산으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단절된 것까지 롯의 딸들은 소돔의 타락한 문화를 가지고 들어 오고 말았습니다. 후에 율법 공부를 통해 알게 되겠지만 근친상간은 하나님께서 엄격히 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자손을 잇는다는 명분으로 딸들은 그 일을 서슴지 않는 겁니다. 롯의 가문을 잇는 것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죄를 허용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롯과 아내와 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세상 문화의 강한 영향력을 보게 됩니다. 요즘 왜 총기 등 폭력 사건이 난무합니까? 헐리우드 문화의 영향입니다. 아이들이 왜 돈 버는 것을 최고로 칩니까? 물질주의라는 세속적인 문명 때문입니다. 왜 대학을 가면 자 믿던 아이들이 신앙을 버리게 됩니까? 그만큼 속세적인 문화의 힘은 상상을 뛰어남을 정도로 강한 겁니다. 우리는 세속적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쉽질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세상과 단절된 삶인가? 하는 의문도 들게 됩니다. 아예 속세를 벗어나 수도승처럼 살아야 하는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런 은둔자의 삶을 원하시진 않습니다.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지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느냐는 겁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6:24). 주님은 세상적인 모든 것을 재물로 간소화시키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만 높여야 합니다. 그런 마음만 갖고 있다면 문제 없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은 단호하게 끊어버리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