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두란노침례교회 새벽기도 예배 묵상 자료입니다.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글수 42
아브라함은 드디어 기다리던 아들을 갖게 됩니다. 그것도 소망이 끊어진 100세의 나이에, 아내 사라는 90세의 나이에 아들을 낳게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때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의 신앙은 한 단계 더 Up-grade됩니다.
1. 이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고는 하나님께서 이미 지어주신대로 이삭이라 이름 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란을 떠난지 25년이 지났으니 참 많은 시간이 지난 셈입니다. 아브라함은 태어난 아들 이삭을 가슴에 품고는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돌아 보았을 겁니다.
사라가 남의 안내가 될 뻔 한 것을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보호하고 구해주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에게 약속한 자녀를 사라를 통해 낳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하갈을 통해 자녀를 구하고자 했던 자신의 믿음없는 모습이 기억나 부끄럽기도 했을 겁니다.
자녀를 약속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을 보여주신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별들처럼 많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 수 많은 별을 직접 만드신 하나님 그 능력의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는 뜻이 있었음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던 생각도 했을 겁니다. 아내 사라도 그렇게 비웃었었는데, 자신들의 믿음 없는 그 웃음이 하나님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삭을 주신 겁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도 참 기이하기만 합니다. 이삭의 뜻이 바로 웃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의 웃음을 이제는 기쁨과 믿음과 감사의 웃음으로 만들어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선 엄하신 분이시지만 유머도 넘치는 분이심을 깨닫고 잠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앞을 보며 달려가야 하는 우리들 삶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받은 복을 헤아려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을 불어 넣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신 일들을 돌아볼 때, 우리는 약해진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찬송가도 있잖습니까? 정말 힘들 때는 아기를 안고 있는 아브라함처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가만히 돌아 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아들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자, 이 일이 가정 불화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라는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겐 이스마엘도 자식입니다. 그러니 그 자식을 어미와 함께 쫓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가 근심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그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질테니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는 지체하질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표현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떠날 때도 같은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바로 바로 순종하는 신앙으로 발전한 겁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그의 변모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하는 것은 순종의 속도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 의심없이 그 즉석에서 따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자신의 지식과 이성으로 따져 보는 겁니다. 그러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요.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순종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내려 놓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갈은 아브라함이 준 떡과 물을 가지고 광야로 나갑니다.
처음 집을 떠날 때 하갈의 마음은 두 가지였을 겁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들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고 자신을 이용하고나서는 이삭이 생기니 이제는 이스마엘이 필요없어져서 자신을 내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요. 토끼 사냥에 잔뜩 부려먹은 개를 이제 기력이 떨어지고 마니 보신탕을 해먹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큰 미움이 그 마음에 담겨 있었을까요?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이 아들을 남보란듯이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가족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 아니겠어요?
그런데 물이 다 떨어지고 아들이 죽을 지경이 되자 하갈의 마음으로부터 두 가지의 사치스러운 감정은 다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하갈은 울었습니다. 그저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을 겁니다. 울면서 일전에 임신한 몸으로 광야에 쫓겨났을 때 만났던 하나님의 사자를 찾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찾았을 겁니다. 그 때와 너무나 흡사한 상황 아닙니까? 하갈의 마음에는 복수고 증오고 이런 생각할 틈이 없었을 겁니다. 저 아이만 살아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울며 부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은 하갈을 만나 주시고, 근처의 물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도 해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나요? 나의 모든 생각과 욕심,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고 주인되시는 하나님만 찾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새벽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1. 이브라함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고는 하나님께서 이미 지어주신대로 이삭이라 이름 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란을 떠난지 25년이 지났으니 참 많은 시간이 지난 셈입니다. 아브라함은 태어난 아들 이삭을 가슴에 품고는 자신의 인생을 한 번 돌아 보았을 겁니다.
사라가 남의 안내가 될 뻔 한 것을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보호하고 구해주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에게 약속한 자녀를 사라를 통해 낳게 하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러면서 하갈을 통해 자녀를 구하고자 했던 자신의 믿음없는 모습이 기억나 부끄럽기도 했을 겁니다.
자녀를 약속하실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을 보여주신 이유도 이제는 알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별들처럼 많음을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 수 많은 별을 직접 만드신 하나님 그 능력의 하나님을 믿기만 하라는 뜻이 있었음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던 생각도 했을 겁니다. 아내 사라도 그렇게 비웃었었는데, 자신들의 믿음 없는 그 웃음이 하나님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삭을 주신 겁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도 참 기이하기만 합니다. 이삭의 뜻이 바로 웃음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의 웃음을 이제는 기쁨과 믿음과 감사의 웃음으로 만들어 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선 엄하신 분이시지만 유머도 넘치는 분이심을 깨닫고 잠시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앞을 보며 달려가야 하는 우리들 삶이지만 이렇게 가끔씩 받은 복을 헤아려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을 불어 넣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신 일들을 돌아볼 때, 우리는 약해진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됩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라는 찬송가도 있잖습니까? 정말 힘들 때는 아기를 안고 있는 아브라함처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가만히 돌아 보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그런데 아들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됩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자, 이 일이 가정 불화로 발전하게 됩니다. 사라는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겐 이스마엘도 자식입니다. 그러니 그 자식을 어미와 함께 쫓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겁니다. 그가 근심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그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을 질테니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듣고는 지체하질 않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는 표현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떠날 때도 같은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바로 바로 순종하는 신앙으로 발전한 겁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하는 그의 변모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하는 것은 순종의 속도에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 의심없이 그 즉석에서 따릅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자신의 지식과 이성으로 따져 보는 겁니다. 그러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요. 우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는 순종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내려 놓을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갈은 아브라함이 준 떡과 물을 가지고 광야로 나갑니다.
처음 집을 떠날 때 하갈의 마음은 두 가지였을 겁니다. 아브라함의 가족들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자기들 욕심을 채우려고 자신을 이용하고나서는 이삭이 생기니 이제는 이스마엘이 필요없어져서 자신을 내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겁니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요. 토끼 사냥에 잔뜩 부려먹은 개를 이제 기력이 떨어지고 마니 보신탕을 해먹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큰 미움이 그 마음에 담겨 있었을까요?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이 아들을 남보란듯이 잘 키워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겁니다. 그게 아브라함의 가족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 아니겠어요?
그런데 물이 다 떨어지고 아들이 죽을 지경이 되자 하갈의 마음으로부터 두 가지의 사치스러운 감정은 다 사라지고 말았을 겁니다. 하갈은 울었습니다. 그저 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을 겁니다. 울면서 일전에 임신한 몸으로 광야에 쫓겨났을 때 만났던 하나님의 사자를 찾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분명히 찾았을 겁니다. 그 때와 너무나 흡사한 상황 아닙니까? 하갈의 마음에는 복수고 증오고 이런 생각할 틈이 없었을 겁니다. 저 아이만 살아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자를 울며 부르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다 내려놓았을 때, 하나님은 하갈을 만나 주시고, 근처의 물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약속도 해주십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나요? 나의 모든 생각과 욕심, 그리고 집착을 내려놓고 주인되시는 하나님만 찾고 있는지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새벽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