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두란노침례교회 새벽기도 예배 묵상 자료입니다.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하루 시작을 말씀과 함께 시작하는.....
글수 42
1.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인 동시에 가장 큰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자녀가 있으신 부모님들은 다 아실 겁니다. 아니 상상도 못한 일이라 아브라함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우리는 짐작도 못할 겁니다. 자녀를 일찍 여의어 본 분이 있다면 그 심정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주신 명령을 즉시 순종하고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최고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는데도 아브라함은 한 마디도 하나님께 되 묻질 않았습니다. 그거 잘못 말씀하신거지요?라고 되묻질 않은 겁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은 실없는 말씀을 할 분이 아니심을 아브라함은 너무나 잘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일찍 집을 떠납니다. 사라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습니다. 이야기 해보아야 자기 다리를 붙들고 놔주질 않을 것을 안 아브라함은 그저 조용히 집을 떠납니다. 최고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시험이 거기서 끝나질 않습니다. 가야할 목적지는 집 앞에 있는 앞산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50여마일 떨어진 곳이라 3일 정도의 길입니다. 본문에도 3일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3일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갈등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3일 동안 이제는 번제로 드려질 아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요? 지금이라도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고픈 마음이 수천번은 들었을 겁니다. 그 3일 길은 아브라함에게 더 큰 시험이었을 겁니다. 사탄과 마귀는 계속해서 그의 귀에 속삭였을 겁니다. 아니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냐? 그깟 하나님이라면 버려라. 욥의 아내가 했던 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말과 유사한 유혹이 계속 그의 마음을 공격해 왔을 겁니다. 모리아 산으로 아들과 함께 올라가면서도 참 힘들었을 겁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있느냐”고 물어 볼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은 찢어지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합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을 향해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라는 단어가 가슴을 치고 듭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독자 이삭이었을 겁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어요? 그런데 그 독자까지도 하나님 앞에 드린 겁니다. 아들을 내려 놓음으로 아브라함에게 가장 우선되는 분, 가장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증명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십니다.
신앙 생활은 내려놓음의 연속입니다. 우리에겐 늘 소중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자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건 바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 새벽 한 번 우리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혹시 2위에 놓여 있진 않습니까? 혹시 3위, 4위…바꾸십시요. 하나님은 늘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음을 늘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시길 축원드립니다.
2.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수로보니게에서 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귀신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딸을 구해달라고 주님 앞에 나와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져줄 순 없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개로 표현한 주님 앞에서 욕하며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대답하며 끝까지 물러서질 않았습니다. 그 물러서지 않는 믿음을 보고 그 여인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중풍병자를 매고 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주님 계신 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불쌍한 친구를 주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갔습니다. 이삭을 잡기 위해 칼을 들어 내려치려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요. 끝까지 간구하고 나가십시요. 어정쩡한 신앙으로는 아무 것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 만족 밖에는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그건 정말로 마약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인 동시에 가장 큰 시험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자녀가 있으신 부모님들은 다 아실 겁니다. 아니 상상도 못한 일이라 아브라함이 얼마나 힘들어 했을지 우리는 짐작도 못할 겁니다. 자녀를 일찍 여의어 본 분이 있다면 그 심정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주신 명령을 즉시 순종하고 나서는 그의 모습에서 최고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아들을 바치라고 하시는데도 아브라함은 한 마디도 하나님께 되 묻질 않았습니다. 그거 잘못 말씀하신거지요?라고 되묻질 않은 겁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하나님은 실없는 말씀을 할 분이 아니심을 아브라함은 너무나 잘 알았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일찍 집을 떠납니다. 사라에게는 한 마디 말도 없습니다. 이야기 해보아야 자기 다리를 붙들고 놔주질 않을 것을 안 아브라함은 그저 조용히 집을 떠납니다. 최고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시험이 거기서 끝나질 않습니다. 가야할 목적지는 집 앞에 있는 앞산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50여마일 떨어진 곳이라 3일 정도의 길입니다. 본문에도 3일 걸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3일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이 얼마나 갈등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3일 동안 이제는 번제로 드려질 아들의 모습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요? 지금이라도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고픈 마음이 수천번은 들었을 겁니다. 그 3일 길은 아브라함에게 더 큰 시험이었을 겁니다. 사탄과 마귀는 계속해서 그의 귀에 속삭였을 겁니다. 아니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자가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냐? 그깟 하나님이라면 버려라. 욥의 아내가 했던 말,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말과 유사한 유혹이 계속 그의 마음을 공격해 왔을 겁니다. 모리아 산으로 아들과 함께 올라가면서도 참 힘들었을 겁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있느냐”고 물어 볼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마음은 찢어지지 않았겠어요?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합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을 향해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제야’라는 단어가 가슴을 치고 듭니다.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독자 이삭이었을 겁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어요? 그런데 그 독자까지도 하나님 앞에 드린 겁니다. 아들을 내려 놓음으로 아브라함에게 가장 우선되는 분, 가장 사랑하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음을 증명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십니다.
신앙 생활은 내려놓음의 연속입니다. 우리에겐 늘 소중한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자녀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건 바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고 계신 겁니다. 이 새벽 한 번 우리 마음을 깊이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혹시 2위에 놓여 있진 않습니까? 혹시 3위, 4위…바꾸십시요. 하나님은 늘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음을 늘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시길 축원드립니다.
2.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선 끝까지 가야 합니다.
수로보니게에서 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귀신들린 딸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딸을 구해달라고 주님 앞에 나와 간절히 구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져줄 순 없다”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개로 표현한 주님 앞에서 욕하며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대답하며 끝까지 물러서질 않았습니다. 그 물러서지 않는 믿음을 보고 그 여인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중풍병자를 매고 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주님 계신 집에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뜯어내고 불쌍한 친구를 주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갔습니다. 이삭을 잡기 위해 칼을 들어 내려치려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숫양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요. 끝까지 간구하고 나가십시요. 어정쩡한 신앙으로는 아무 것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저 자기 만족 밖에는 돌아오질 않습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그건 정말로 마약과 같은 것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