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127세를 살고 죽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슬펐고, 아내를 묻을 매장지를 얻기 위해 헷 족속과 협상을 벌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그저 그 땅의 나그네에 불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 땅을 포함해서 가나안 땅 전체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현재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자일 뿐, 지금 우거하고 있는 땅에서 아내의 매장지 하나 갖고 있지 못한 나그네에 불과한 겁니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은 400세겔이라는 터무니 없이 높은 값을 치루고 매장지인 굴과 굴에 딸린 밭을 삽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모양으로 이 땅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순간 귀한 약속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때에 이 땅에 이루어질 1000년 왕국의 백성으로 살 곳이며, 그후에 이루어질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천국 백성으로 살게 될 것을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당장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앞으로 가나안 땅이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수 밖에 없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그 날이 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이 땅을 나그네로 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본문의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몇 가지 답을 얻게 됩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방백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영어 성경은  the prince of God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에 와서 살고 있는 아브라함의 삶을 죽 지켜 보았습니다. 지켜본 결과 그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분명히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겁니다.
이 한 마디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의 관계를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삶 중심에 늘 하나님께서 계셨음을 이 명칭 속에서 우리는 알 수 있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은 정확한 겁니다.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서 직분자를 선출할 때, 그 후보자의 자녀들을 만나본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어 본답니다. 몇 가지 질문만 던져봐도 그 후보자가 가정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금방 다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직장이나 사업장의 동료나 종업원을 만나 그분에 대해 물어본답니다. 몇 가지 질문만 해보면 그 후보의 삶의 모습을 금방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인터뷰 결과를 직분자 선출에 반영한답니다. 참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교회 밖에서의 우리 삶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교회에서는 아주 잘할 수 있습니다. 교인들을 의식하고 교역자들을 의식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교회 밖에서의 삶은 의외로 자유분방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교인들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의 편지로 나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을 읽어보고 교회와 하나님을 평가하는 겁니다. 우리는 밖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도,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할 수도 있는 겁니다. 또한 전도의 문을 열 수도 또는 닫을 수도 있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군요 라고 평가받는 우리 성도님들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천국을 소유한 백성으로서 은혜를 베풀며 사십시요.

오늘 아브라함은 바가지를 톡톡히 쓰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6장 24절에 보면 오므리라는 왕이 사마리아 전체를 6000세겔에 사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를 사는데 6000세겔 들었는데, 지금 아브라함은 조그만 밭떼기와 그에 딸린 굴 하나를 사는데 400세겔을 쓰고 있는 겁니다. 터무니 없는 값이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그 값을 치룹니다. 아브라함이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성경학자들이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땅이 언젠가는 다 자신의 후손들의 것이 될텐데 지금 지불하고 있는 돈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은 400세겔을 deposit  money로 지불하고 있는 셈입니다. 400세겔로 가나안 땅 전부를 살 수 있다면 그 돈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아브라함에게는 그런 여유로운 마음이 생긴 겁니다.
주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상대방이 오리를 함께 동행하지고 하면 10리를 같이 걸어주고, 속옷를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도 주고, 구하는 자에게 주고 돈을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참 지키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0000달란트를 빚진 종이 있습니다. 10000달란트는 1사람이 20만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니 상상이 안되는 큰 돈입니다. 그런데 그가 도저히 갚을 능력을 본 임금은 그 빚을 다 탕감해 줍니다. 그런데 그 종이 가다가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잡아 가두고 힘들게 하는 합니다. 1 달란트가 6000데나리온이니 그 차이를 알겠지요?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은 당장 그 종을 잡아 들여 혼을 냅니다.
우리는 이미 10000달란트 보다도 더 큰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좀 더 은혜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그 은혜 속에서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겁니다. 받은 은혜를 나누는 귀한 삶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