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흉년이 오자 이삭은 가족들과 함께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목적지는 나일 강으로 인해 모든 것이 풍족한 애굽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머물길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이삭에게 다시 다짐하시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축복의 내용은 3 가지입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후손을 하늘의 별같이 번성케 하겠다.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블레셋 족속들이 살고 있는 그랄 땅에서 그 이동을 멈춥니다. 그랄 땅에서 이삭은 아버지와 똑 같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랄 땅은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명하신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환경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고 마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아무런 일도 나지 않았지만 이삭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를 깨닫게 됩니다. 그런 후, 그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게 됩니다. 농사를 하면 백 배나 얻어 결국 거부가 됩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축복하는 이유를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삶에서 찾고 계십니다.

5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율례와 계명과 법도를 잘 지켰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의 축복을 이어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선 부모의 신앙을 통해 자녀들을 축복하고 계신 겁니다.
전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아버지는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 40일 작정 기도를 하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되신 후 가정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그 아버지 목사님의 그 순전한 기도와 희생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간증을 하시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목회를 하고 계신 겁니다. 청소년 그룹을 위해 써낸 성경 교재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지금은 분당에서 개척한 교회에서 아주 풍성한 목회를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 목사님은 자기가 이렇게 형통한 길을 가는 이유를 아버지의 기도의 순교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죽기까지 충성한 그 신앙을 보시고 자신을 축복하고 계심을 믿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러신 분임을 오늘 본문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난 자녀들에게 부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영적인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물질적인 축복은 잠시 누리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잠언에서 말씀하시듯이 물질적인 축복은 영적인 타락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축복, 늘 기도하고,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으며, 감사의 조건만 발견하고, 그래서 늘 영혼이 기쁜 삶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인 겁니다. 부모님의 신앙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는 이 영적인 축복이 그냥 대물림되는 겁니다. 전 우리 두란노 교회가 그런 영적 축복을 대물림하는 교회가 되길 축원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도 아브르함과 같은 삶을 자녀들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둔 삶…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주신 영적 축복을 자녀들에게도 부어 주실 것입니다.

2.        이삭은 다투지 않았습니다.

14절부터는 이삭이 우물 때문에 겪는 어려움을 적고 있습니다. 이방인 이삭이 잘되자 그랄 땅의 블레셋 사람들은 시기합니다. 자기 땅 그리고 자기 족속도 아닌 사람이 잘 살면 지금이나 그때나 똑같이 배가 아프게 마련인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삭의 사람들이 우물을 파면 매워버리던가 그 우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빼앗고 맙니다.
하지만 이삭은 그들의 다툼에 정면대응하지 않고 그저 주고 떠나고 주고 떠납니다. 그들이 시비를 걸지 않을 때까지 끝까지 물러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요즘 같은 경쟁시대 사고로 보면 이삭은 참 바보 같은 사람입니다. 이삭은 하나님 때문에 자신을 두려워하는 아비멜렉에게 가서 따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질 않았습니다.
이런 이삭의 모습을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을 나눌 줄 아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을 움켜쥐고 자기만 누리는 그런 옹졸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나요? 다 빼앗겼나요? 아니면 궁핍하게 되었나요? 아닙니다. 22절에 보니 오히려 그의 지경이 넓어졌다고 이삭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 우리 교회가 이런 원칙을 적용하며 축복을 이웃들과 함께 공유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웃과 나누고 이웃을 섬기는 겁니다. 동전 선교도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겁니다. 이삭처럼 밖으로 밖으로 나가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나누는 모습으로 살길 원하는 겁니다. 그 결과 우리 교회도 그 지경이 넓어지게 될 것을 전 분명히 믿습니다.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섬기고 확장해가는 일이 분명히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런 교회의 모습으로 세워져가길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