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편지
| 편지 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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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주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몇 년 전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집사님이 제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집사님,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묻는 제게 “아빠와 큰 아들 때문에 그래요.”
이야기인즉슨, 아빠의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큰 아이의 내면에 상처를 남겼는데,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 상처가 폭발하고 말았다는 겁니다.
결국 아들은 집을 나가 자기 식으로 살아가겠다고 버티고 있고,
아빠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아내와 엄마로서 중간자의 입장에 선 집사님의 집채만한 고민이
얼굴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던 겁니다.
게다가 어떤 일 때문에 아빠와 큰 아들이 피할 수 없이 한 차로 장거리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으르렁거리는 평소의 사이로 미루어볼 때,
여행 중 좋지않은 일이 생길까봐 여간 걱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기도를 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때 전 웃으면서 그 집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한 차로 장거리 여행을 다녀와야 한다니 오히려 잘된 것 같습니다.
3일간이라고 하셨나요? 그 3 일동안 아빠와 아들이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겠어요?
처음에야 불편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마음을 튼 이야기들이 오고갈 겁니다.
그러는 중에 오해도 풀리고 이해가 생겨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겁니다.
집사님은 그저 3일 동안의 여행을 통해 둘 사이에 진정한 대화의 물꼬가 터지기만을 기도하세요.
주님께서 그 3일간을 사용하셔서 큰 기적을 이루실 겁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겪은 비슷한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성장하면서 제 머리속에 각인된 아버님의 모습은 엄하심, 고지식하심이었습니다.
그런 인식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님과의 사이는 어색해지고
당연히 대화 양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집으로 전화해도 아버님이 받으시면 간단하게 인사드리고는
곧바로 “어머님 계세요?” 하고 물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심리적인 장벽이 어떤 계기로 다행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2001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일주일 간의 한국 방문을 통해 꼭 해야 할 일 한 가지를 계획했습니다.
그건 새벽에 산을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산을 끼지 않은 동네가 없잖아요.
게다가 40여년을 꾸준히 산에 오르고 계신 아버님 때문에 오를 산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건강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 일을 통해 더 큰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매일 40여분씩 새벽 길을 걷는 동안 대화의 봇물이 터지고 만 겁니다.
그러면서 아버님과 저를 막고 있던 심리적인 담이 봄볕에 눈녹듯이 사라지고 만 겁니다.
얼마나 기쁘던지.
진실한 대화는 어떤 관계든지 녹여내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도 대화의 길을 모색하잖아요?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에 있는 친지나 이웃이 주변에 있다면
당장 그분을 초대하거나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차 한 잔 또는 음식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하십시요.
처음 얼마간의 불편만 참으시면 대화의 길은 열리게 됩니다.
그 길을 통해 관계의 봄은 반드시 옵니다.
이 준 목사 드림


